“확률 낮아도 탈북 시도 멈추지 않아”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북한이 국경과 사회 통제를 한층 강화하면서 북한 주민의 삶은 더 궁핍해졌습니다. 또 북한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도 매우 어려워졌는데요. 2023년 5월, 목선을 타고 탈북한 김일혁 씨가 북한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생생한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북 압축파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내부 소식이 담긴 파일을 열어보겠습니다. 탈북민 김일혁 씨와 함께합니다.]

“북 주민 인내심 한계… 하루에도 많은 곳에서 탈북 기회 엿본다”

[기자] 김일혁 씨,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양해진 탈북 경로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최근 육로와 해상을 통한 탈북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렇게 위험 감수하고 탈북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김일혁] 최근에 온 사람들이 황해도에서 교동도로 건너왔거든요. 제가 살던 곳이 황해도이기도 한데, 황해도 주민들로서도 평상시의 상황들이 엄청 본인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고요. 안 그래도 남쪽이 좋은 것 같고, 남쪽이 자유민주주의 국가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건 평소에 한류 문화를 많이 보니까 사람들이 많이 깨어 있는 편이긴 한데, 북한 당국이 이러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고 힘들게 하니까 참을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한 거죠. 그러니까 속수무책으로 앉아서 굶어 죽느니, 가다 맞아 죽는 편이 낫다는 모진 마음을 먹은 거죠.

일단 전체 상황을 놓고 볼 때 최근 북한에서 대규모 홍수가 났잖아요.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이 어떤 조치를 취했냐하면, 피해 입은 지역을 당이나 국가에서 지원하는 게 아니고 지역별로 나눠 맡기거든요. 그러니까 ‘황해도에서는 식량 몇만 톤을 보장하라’, 또 평안북도나 평안남도에서는 ‘이번에 몇만 채의 집이 못 쓰게 됐으니까, 시멘트를 얼마를 대라’, 또 어디에서는 ‘수재민들을 도와줄 피복료를 얼마 정도 내라’, 이런 식으로 과업을 주거든요. 그러면 그 과업을 맡은 도당 책임비서라는 사람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뭔가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주민들에게 내려주면서 수탈을 하거든요. 최하 말단 조직까지 명령이 전달되면, ‘당의 명령이니까 무조건 관철해야 한다. 언제까지 우리는 당의 계획을 이만큼 실행해야 한다’. 저도 거기(북한에) 살면서 그러한 상황들을 많이 겪어봤죠. 또 북한에서 오물 풍선을 한국에 보내고 있는데 김정은이 제 주머니에서 돈을 주면서 ‘쓰레기 풍선을 사서 보내라’ 이렇게 하지 않거든요. 군부에서 보내는 쓰레기인 게 분명한데요. 군부대마다 이런 과제가 떨어져서 군인들을 피로하게 만들었을 건 뻔한 일입니다. 

강력한 단속 능가하는 탈북 경로 찾기 마련

[기자] 요즘에 그런 분위기가 북한 내에서는 팽배할 것 같은데요. 다양한 탈북 경로를 통하는 이유가 기존의 중국을 통한 주요 탈북 경로는 사실상 사용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김일혁] 지금까지 대부분 사람이 중국으로 탈북했지만, 중국 쪽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고, 이를 엄청나게 통제하기 위해서 (북한 당국이) 장벽도 쌓고, 전기도 투입하고, 지뢰까지 매설했는데요. 제가 오기 얼마 전에도 제 친구 하나가 국경 경비대에서 군 복무를 하다가 제대했는데, 실제로 지뢰를 매설하기 시작했고, 전기를 투입한다는 이야기는 전부터 들었거든요. 하지만 한쪽을 봉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마음이 잠잠해지는 건 아닌 거죠. 강력한 단속법이 나오면, 그 단속법을 능가하는 불법이 또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쪽으로 나가던 길목을 차단하니까, DMZ(군사분계선)나 NLL(북방한계선)이 위험한 군사 지역이지만, 사람들이 가던 길을 막아 놓으니까 돌아서라도 가려고 하는 본성이 나오는 거죠.

일단 탈북하려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많은 곳에서 여러 명 될 거예요. 그런데 탈북에 성공하는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탈북하려고 마음먹은 100명 중에 성공한 한 사람일 뿐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탈북하려고 하다가 발각돼서 붙잡혀가는데, 북한 당국에서 탈북하려는 걸 붙잡아서 여기저기에 소문을 내면, 많은 사람이 동요할 수밖에 없고, 마음속으로만 (탈북을)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이 실천에 옮길 수밖에 없거든요. 그게 선동 효과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본인이 탈북해서 언론에 나와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북한 당국에서도 조용히 지나갑니다. 일단 북한에서는 탈북하려다 적발돼 붙잡히는 사람이 매일 같이 일어나고 엄청나게 많은 숫자이지만, 이걸 소문내거나 공유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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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4명이 지난 7월 24일, 소형 목선을 타고 동해 북방한계선(NLL) 아래로 내려와 속초 앞바다에서 한국 어민에 의해 발견됐다. 이날 오후 한국군 당국이 소형 목선(빨간색 원 표시)을 양양군 기사문항으로 예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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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경로로 넘어오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고, 북한 당국은 더 강력한 처벌과 함께 국경 경비를 강화할 텐데 앞으로의 탈북 상황은 어떻게 내다보십니까? 그럼에도 많이 넘어올까요?

[김일혁] 앞으로 더 많은 인원이 넘어올 것 같아요. 그건 확신합니다. 지금 김정은 총비서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는 주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을 줬거든요. 국가에서 배급을 못 주니까 가능하면 농민들이 새 땅을 일궈서라도 곡식을 심어서 먹고살 수 있는 조건을 줬는데, 김 총비서는 농민들이 새 땅을 일궈 조금의 뙈기밭을 만들어 개간해서 농사를 지으면 그걸 다 뺐거든요. ‘우리나라 영토 안에 있는 땅은 설사 황무지라도 그건 다 국가 토지다’라면서 처음에는 풀이 많고 나무 그루터기가 많아서 농사를 못 지을 때는 그냥 내버려두다가, 그곳에 곡식을 심어놓으면 그냥 뺐거든요. 그런 점에서 농민들도 엄청나게 살기 힘들어지고 있고, 또 노동 계급에 대해서는 ‘이제 장사도 하지 마라, 이건 사회주의 체제에 어긋나는 행위다’라는 식으로 엄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사해 먹고 살기도 정말  어려워졌어요. 예전 같지 않아요.

예전에는 그나마 본인이 부지런히 뛰어다니면 장사라도 해서 그런대로 먹고살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장사하는 것 자체도 역적이라며 몰아세우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장사도 몰래 숨어다니면서 해야 하니까 잠자는 시간이 줄어드는 거예요. 김정일 때만 해도 대낮에 하던 장사를 김정은 시대에는 밤에 하고 있어요. 사람들을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그 한계점에 도달해서 앞으로도 많은 탈북민이 생길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기자] , ‘북 압축파일’, 오늘은 탈북민 김일혁 씨와 함께 다양해지는 탈북 경로와 탈북 증가 상황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김일혁 씨,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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